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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우리네의 가장 친숙한 악기, 가얏고 1"을 통해 전해드린 가야금의 유래와 정악가야금, 산조가야금의 모양새, 그리고 연주법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지난 글보기 - "우리네의 가장 친숙한 악기, 가얏고 1"



세조 임금님도 가야금을 타셨다?

세조실록에 이런 이야기가 전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세조가 가야금을 타고 있었는데, 이 모습을 본 세종 임금이 감탄하면서 말하기를,

“진평대군(세조)의 기상으로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겠는가?”

하였다는 것입니다. 


짧은 일화지만 한 나라의 임금님께서도 이렇듯 가야금을 빼어나게 연주하실 수 있었다는 것은 오늘의 우리 현실과 견주어볼 때, 참으로 부러운 ‘멋스러움’이 아닐 수 없겠죠.

여러 실록의 음악관련 기사들이 드러내듯이 진평대군은 이같은 음악에 대한 탁월한 식견을 바탕으로, 훗날 세조 임금으로 재위하며 많은 음악관련 위업들을 쌓았습니다. 지면이 허락지 않아 다 열거하지는 못하여 읽는 이들께서 깜냥(일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시는데 어려움이 있으시겠지만, 이는 조선조 역대 왕들 중 손꼽히는 것이었다라는 정도로 이해해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상상 속에 울리고 있는 가야금

지금에야 한 나라의 임금이 실제 가야금을 연주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우리의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해서 옛 모습을 그려낼 수 있게 하는 각종 도상자료(종교 ·신화 및 그 밖의 관념체계상 어떤 특정한 의의를 지니고 제작된 미술품에 나타난 인물 또는 형상)들이 곁에 있다는 사실이 여간 다행스럽지 않습니다.




[ 가야금을 연주하는 토우(土偶) ]



그러나 한편, 고대 동북아 지역에서 두루 연주된 것으로 알려진 ‘고’(琴, 대개의 현악기류를 일컫는 이름)의 도상자료에서의 모습은, 아쉽게도 거의 대부분이 그것이 현악기라는 것만을 짐작하는데 그치게 하고 있죠. 다시 말해 명확히 가야금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고대의 도상자료를 찾아내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찌됐든 가야금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고대 도상자료의 으뜸을 꼽자면, 5~6세기 즈음에 만들어져 1970년대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30호 무덤에서 발굴된 국보 195호 <토우 장식 긴 목 항아리>가 될 것입니다. 이 항아리에는 여러 모습의 토우(흙으로 만든 인물상)들이 꾸며져 있는데, 그 중 한 토우가 정갈한 자세로 가야금을 연주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이두’의 형태를 뚜렷히 드러내고 있는 가야금의 형체가 마치 그 모습을 보는 이로 하여금 풍류음악 한 자락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죠.




[ 신윤복의 "청금상련(聽琴賞蓮)", 간송미술관 소장 ]



시간을 거슬러 올라 18세기 즈음에 그려진 도상자료로, 신윤복의 <청금상련>과 김희겸의 <석천한유>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 두 그림자료에서는 가야금의 형체나 연주되는 상황이 <토우 장식 긴 목 항아리>에서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죠. 오늘날 연주하고 있는 풍류가야금의 형체와 전혀 다르지 않을뿐더러 연주하는 자세 또한 사극의 한 장면을 그림으로 옮겼다 할 수 있을 정도랍니다.



[ 김희겸의 "석천한유(石泉閑遊)", 예산전씨종가 소장 ]



기록매체가 등장하기 이전 청각예술인 음악은 이렇듯 당시 사람들의 미적 감각으로 시각예술로 거듭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이와 같은 도상자료를 접하면서 그저 스치듯 눈길을 주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얻거나 상상력의 나래를 한껏 펼치거나 하는 등의 노력들은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새 살 돋는 가야금

가야금은 1,500여년을 살아왔죠. 비록 옛 소리나 그 모습은 도상자료를 통해 그저 ‘떠올림’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가야금이 여러 악기들과 함께 우리네의 사랑을 받지 않은 때가 없음은 굳이 ‘떠올림’이 아니어도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 1914년도 가야금을 연주하는 소녀의 모습 ]



긴 시간을 살아오며 그 울림을 만드는 이, 듣는 이에 의해 가야금은 수많은 음악을 잉태하고, 낳고,자라게 할 것을 요구 받아왔습니다. 또한 2010년을 사는 우리에게도 가야금에 돋은 새 살은 이제까지와 또다른 모습을 요구받고 있죠. 서양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가야금, 비발디의 <사계>나 비틀즈의 <Let it Be>를 연주하는 가야금, 랩과 B-boy들의 현란한 몸짓과 함께 연주하는 가야금 등 ‘새로움’을 위한 다양한 시도들은 이루 헤아리가 어려울 지경입니다. 그러면서 가야금은 우리네와의 각별한 정을 회복해가고 있다고들 하죠. 좋은 일입니다. 




[ 숙명가야금연주단과 B-Boy ]



가야금을 선두주자로 하여 우리의 악기들, 음악이 그 오랜 역사를 맺어왔던 정을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 좋은 일이라 여겨집니다. 다만 가야금의 그 본 모습을 잃지 않고, 가야금만의 독특함을 버리지 않고, 우리네 음악의 역사를 다시 올곧게 더듬어갈 수 있도록 가야금에게 요구하는 일도 게을리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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