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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Korean Music)/국악기 길라잡이

단촐한 악기, 단소가 빚어내는 화려함

헷갈리는 형제같은 악기, 단소와 퉁소

‘짧은 퉁소’, 단소(短簫)의 이름을 풀면 이렇습니다. 

그만큼 퉁소라는 악기와 닮았기에 이런 이름이 붙여진 것일 것이고, 그런 탓에 많은 이들이 단소와 퉁소를 혼동하여 알고 있죠. 하긴 단소를 피리와 헷갈려하는 분들도 참 많죠.



[ 북청사자놀이의 퉁소 연주 모습 ]




퉁소를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사자탈을 쓰고 나와 걸진 한 판의 기예를 펼치는 <북청사자놀음>을, 또 단소를 잘 모르는 이들이라면 임권택 감독이 천재화가 장승업을 그린 영화 <취화선>을 보면 이 둘을 구분하는데 확실한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영화 "취화선(醉畵仙)" 공식 사이트 ]




<취화선>에서 연기자 최민식(장승업 역)과 유호정(매향 역)이 함께 연주하는 장면의 최민식이 부는 악기가 바로 단소이며, <북청사자놀음>에서 놀이판의 옆에 비껴서서 세로로 세워 들고 부는 악기가 바로 퉁소입니다. 



이제 단소와 퉁소를 뚜렷이 구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단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요.


뚝 자른 대나무 구멍 뚫으니 악기 되다

단소가 언제부터 불렸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조선시대 말엽부터 독주악기 또는 세악(단잽이 악기들 여럿이 편성되어 연주하는 형태)의 한 몫을 담당하는 악기로 각광을 받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죠. 


단소의 생김새를 엿보면 실로 ‘단촐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대나무를 뚝 잘라다가 지공(指孔, 손가락을 막고 떼어 음정을 만들어내는 구멍) 네 개와 취구(吹口, 입술을 대고 소리가 나도록 입김을 불어넣는 U자 모양의 홈)를 만들었을 뿐인데, 이 몸에서 내는 소리는 그야말로 듣는 이의 오금을 쥐게 만듭니다. '백상이불여일문(百想而不如一聞)'이라고 단소 연주곡 함 들어보실까요.



현재는 정규 초중등교육과정에서도 단소에 관한 학습내용이 수록되어 있고, 보급을 위해 제작된 플라스틱 단소도 있어서 악기의 대중성은 이전에 비해 훨씬 커졌을뿐 아니라 모양새를 봐서는 지극히 소박한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단소를 가지고 그럴싸한 연주를 뽐내기에는 여간한 공력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장벽으로 우리를 막고 서 있죠.


쓰임새에 따른 세 가지의 단소

알고 보면, 단소에는 세 가지 다른 악기가 있습니다. 가장 널리 쓰여 잘 알려져 있는 지공 네 개짜리 단소와 지공 다섯 개짜리 단소, 몸통이 좀 더 굵고 길이가 긴 단소가 그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단소는 각기 쓰임새에 따라 제 기량을 발휘하는데, 

우선 지공 네 개가 뚫려 있는 단소는 청성곡이나 영산회상, 가곡과 같은 정악에 주로 쓰여 ‘정악단소’라고도 불리는 악기(여러분들이 알고 계시는 단소)이고, 
지공이 다섯 개인 단소는 단소산조와 같은 음악의 연주에 쓰이며 ‘향제단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악기입니다. 
또한 몸통이 굵고 긴 단소는 <줄풍류>라고도 하는 <현악영산회상>을 4도 아래로 낮춰 만들어진 <평조회상>이란 곡의 연주에 쓰여 ‘평조단소’라고 불리는 악기입니다.



[ 평조단소와 생황 연주모습 ]



천변만화(千變萬化)의 악기

맑고 높은 음빛깔로 여러 악기들과 어울려 연주해도 쉽사리 도드라지는 것이 단소가 지닌 매력이죠. 

거문고, 가야금, 대금, 해금, 피리, 장고와 같이 영산회상 한 바탕이라도 연주할라치면 빠뜨릴 수 없는 악기가 되어 맛깔스러운 음악을 빚어내는데 톡톡히 한 몫을 해냅니다. 
그런가하면 양금이나 생황과 함께 병주(竝奏, 둘 또는 세 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방식)를 할 때 역시, 단소는 청아한 울림으로 멋들어진 어울림을 만들어내죠.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단소가 지니고 있는 악기로서의 매력이 더욱 빛나는 것은 아무래도 혼자 연주될 때가 아닐까싶습니다. 특히 독주곡으로 유별난 사랑을 받는 청성곡(淸聲曲, ‘청성자진한잎’이라는 또다른 이름을 지니고 있는 곡)은 단소를 부는 이의 솜씨에 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 천가지 만가지의 끊임없는 변화)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여러 악기들과의 연주에서 단소 소리를 구분해가며 음악을 들어보시면 아주 색다른 느낌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국립국악원이 연주하는 영산회상 중 "하현도드리부터 군악까지"를 들어보시죠.




신소(神簫) 전추산, 구례향제줄풍류의 거목(巨木) 김무규

단소의 명인을 꼽으라면 대개 서슴지 않고 전추산을 꼽습니다. ‘추산(秋山)’이라는 호로 더 유명한 전용선(1884-1967)은 <단소 산조>로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죠. 

본래 단소라는 악기는 지공의 크기가 작고, 취구가 작아 산조음악이 요구하는 움직임이 많은 선율이나 떨림의 폭이 큰 요성(搖聲, 떠는 소리)을 표현하는데 불가능한 악기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고의 노력과 남다른 기예의 능력으로 이를 극복하여 <단소 산조>를 완성한 이가 바로 전용선이었던 것이죠. 또한 그 연주의 탁월함이 신기(神技)에 가까워 사람들은 그를 ‘신소(神簫, 신이 부는 단소)’라고까지 격찬하였던 것입니다. 


[ 구례향제줄풍류 연주모습 ]



이후 구례향제줄풍류로 이름을 떨친 김무규(1908-1994)가 그의 대를 잇는 단소의 명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1985년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83-가호 구례향제줄풍류 단소 예능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한 그는 ‘기교와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편안하고 담백한 맛이 깊이 우러나는’ 연주자로 인정받았죠.


지금은 이 두 명인의 소리세계를 직접 귀로 여행할 수 없게 되었으나, CD로라도 느껴보실 분들은 아래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