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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Korean Music)/국악기 길라잡이

장단의 오묘함, 장고의 위대함 !

생명의 뿌리 공기, 음악의 뿌리 장단

제아무리 우리 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는 이도 악기 하나 대보라면 서슴지 않고 댈 수 있는 악기, 장고! 그만큼 널리 알려져 있는 우리 악기 중 으뜸이 바로 장고일 것입니다. 




[ 정악 장고 ]



우리 생활 속에서 이 악기의 유명세는 물 속에서 ‘물장구치다’, 상대의 말에 ‘맞장구치다’, 이야기의 핵심을 에둘러 말하는 ‘변죽만 울리다’와 같은 표현을 통해서 쉽사리 짐작할 수 있죠. 또 서로 일을 미루고 하지 않을 때 ‘장구 치는 사람 따로 있고 고개 까딱이는 사람 따로 있나’라든가 거들어 주는 사람이 있어야 일을 할 수가 있다는 뜻으로 ‘장구를 쳐야 춤을 추지’와 같은,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관용적인 표현에서도 악기의 이름이 빈번히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널리 연주되는 악기였으면 일상의 표현에도 악기의 이름이 사용되는가 말이죠.


실제 음악에 있어서도 장고는 끼여 연주되지 않는 경우가 없다할 정도로 쓰임새가 많은 악기입니다. 

작곡가에 의해 새로이 창작되는 음악이나 <청성곡>과 같은 몇몇의 독주곡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음악의 반주에는 장고가 쓰이고 있습니다. 서양음악에서 반주악기로 널리 쓰이는 악기인 피아노가 음을 표현하는 악기인 점에 반해, 음을 표현하지 않는 타악기가 반주악기로 쓰인다는 사실은 서양음악과 대별되는 우리 음악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라 할 수 있죠. 이 사실에 대해서는 여기서 일일이 나열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힘드실테니, 읽는 이들께서 여러 음악들을 들어보시며 직접 확인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장고'가 맞나요? '장구'가 맞나요?

“지금 이야기하는 악기의 이름이 장고가 맞나요? 장구가 맞나요?”


장고에 대해 가장 많이 던져지는 물음이 이 질문일 것입니다.


"장고도 맞고 장구도 맞습니다."


장구의 옛 형태 악기로 ‘세요고(細腰鼓 : 허리가 잘록하게 가늘게 생긴 북 종류)’ 또는 ‘요고’가 있죠. 이와 같이 허리가 잘록한 울림통의 양편에 가죽을 대서 울림을 만들어내는 타악기는 동북아지역에 두루 쓰여왔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타악기를 우리나라에서는 ‘장고(杖鼓 : 가느다란 대나무 막대기를 쥐고 치는 북 종류)’ 또는 ‘장고(長鼓)’라고 이름하였다. 이렇듯 한자어 이름으로는 ‘장고’가 맞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장구’라는 이름으로 세간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교육적 활용에 혼선을 빚는 것을 막기 위해 1996년 여러 차례의 회의, 공청회 등을 통해 국악교육협의회가 마련한 『초․중등학교 국악교육내용 통일안 Ⅱ』에서 ‘장구’라는 이름을 채택하여 공표한 바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이름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애쓰는 것보다 이 악기가 왜 우리 음악에 있어 도드라지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일 듯 싶습니다.




[ 국립국악원에서 2005년 5월 20일 개최된 하남 이성산성에서 복원한 6세기경의 요고 연주모습 ]




장단을 몸으로 표현하는 장구

“덩기덕 쿵더러러러 쿵 기덕 쿵더러러러”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굿거리장단이라는 이름의 ‘장단’입니다. 장단이란 장구의 노래라고 할 수 있죠. 

한편 장구가 내는 소리를 들리는데로 적은 위와 같은 것을 ‘구음(口音 : 입소리)’이라고 한답니다. 이렇듯 장구는 장단을 구음으로 표현하는데,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엇모리’, ‘세마치’와 같은 장단이 반주로서 주로 연주되는 것들입니다. 이 밖에도 풍물에 쓰이는 ‘일채’, ‘이채’, ‘삼채’, ‘칠채’ 등 수많은 장단들이 있고, 굿음악에 쓰이는 현란한(?) 장단들도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로 많죠.


장구는 다종다양한 장단으로 노래나 여타 악기들의 연주에 반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장단의 역할에 대해, 음악에 있어 그저 부수적인 역할을 하는데 그치지 않는 것 정도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장구 반주가 있는 음악은 장구(또는 장단)에 의해 시작되어 장구에 의해 바뀌고, 장구에 의해 끝이 맺어지게 됩니다. 


판소리에서는 장단을 연주하는 이-물론 판소리의 반주 악기로는 소리북을 사용하지만 이도 역시 장구와 마찬가지로 장단을 통해 반주의 역할을 합니다-를 가리켜 ‘고수’라 하고, 고수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말로 ‘일고수 이명창(一鼓手 二名唱 : 한 명의 뛰어난 고수의 장단으로 두 명의 명창이 만들어진다는 뜻)’이나 ‘부처님 살찌고 안 찌기는 석수장이 손에 달려 있는 것처럼 명창의 소리는 고수의 장단에 달렸다’와 같은 것이 잘 알려져 있죠. 고수의 역할에 대해서는 근대의 최고 명고수로 꼽히며 “내 북에 앵길 소리가 없다”는 자신감까지 나타냈던 김명환의 말만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없을 듯 싶습니다.


“장단의 빠르기를 분위기에 맞게 거둬주거나 늦춰주고, 북가락을 다양하게 변주함으로써 멜로디에 화답하며, 추임새로써 음악의 공간을 메우며 창자의 음을 돋우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다가, 창자가 잊어버린 가사를 대주기까지 하니 한마디로 고수는 판소리의 지휘자 노릇을 하는 셈이다. 고수는 창자와 대화하면서 판소리를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장구가 한 가지가 아니다?

장구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정악장구와 풍물장구입니다.




[ 풍물 장구 ]



정악장구는 주로 반주에 쓰이기 때문에 ‘반주장구’라고도 불리우는데, 풍물장구에 비해 울림통의 크기나 길이가 크고 길죠. 따라서 풍물장구에 비해 묵직하고 낮게 울리며, 오른손에 장구채(또는 열채)를 쥐고 채편을 연주하며 왼손은 맨손으로 궁편을 연주합니다. 


이와 달리 풍물장구는 정악장구에 비해 가볍고 높은 울림을 지니고 있으며, 오른손은 정악장구와 마찬가지로 장구채를 쥐고 채편을 연주하며 왼손은 궁글채를 쥐고 궁편을 연주합니다. 장구채 역시 두 장구에 사용하는 것이 서로 다른데, 정악장구 연주에 사용하는 장구채는 풍물장구의 장구채보다 길이가 짧으며 전체적인 채의 넓이가 가늘죠.


또한 연주법에 있어서도 정악장구의 경우 바닥에 앉아 연주하며, 음악에 따라 독주나 세악편성의 음악(산조나 가곡 등), 줄풍류의 반주를 할 때는 채편의 변죽을 장구채로 연주하고, 장구의 음량이 커야하는 관현악편성의 반주를 할 때는 채편의 복판을 연주합니다. 한편 풍물장구의 경우에는 바닥에 앉아 연주하는 ‘앉은반’과 장구를 끈으로 묶어 매고 서서 연주하는 ‘선반’이 있으며, 음악에 상관없이 채편은 복판을 연주하여 꽹과리나 징, 북과 같은 여타 악기들의 소리에 묻히지 않게 하고, 궁편과 채편 양편을 궁글채로 연주합니다(즉 궁글채로 궁편을 치고 채편도 궁편처럼 친다). 


이같은 차이는 두 장구의 쓰이는 음악환경이 다른데서 비롯되는데, 정악장구는 주로 실내에서 선율악기들의 반주 역할을 하는 탓으로 장구의 음량이 여타의 악기들과 어울림을 빚어낼 수 있어야하고, 풍물장구는 주로 야외에서 타악기들과 함께 장단을 연주하는 탓으로 장구의 음량이 여타의 악기들의 음량만큼을 요구받기 때문이죠.




타법(打法; 장구연주법) 네 가지로 명고(名鼓; 뛰어난 장구연주자)가 되자 !

위에 비교한 것처럼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으나 두 악기가 타법에 있어서는 덩 · 덕 · 쿵 · 더러러러[한자어로는 ’쌍(雙) · 고(鼓) · 편(鞭) · 요(搖)‘]’의 네 가지 기본 타법을 모태로 그토록 다종다양한 장단들을 낳았다는 점에 있어 같습니다. 즉, 채편과 궁편을 동시에 울리는 ‘덩’과 채편을 울리는 ‘덕(또는 딱)’, 궁편을 울리는 ‘쿵(또는 궁)’, 채편을 잦아들며 떨게 울리는 ‘더러러러’의  여기에 ‘기덕 · 구궁 · 더러덕’을 비롯한 고난도의 여러 타법들이 더해져 장단의 화려한 표현을 빚어내는 것이죠.


실제 장구 악기가 없이도 장단을 표현할 수 있는데, 양손으로 무릎을 장구삼아 치는 무릎장단이 그것입니다. 장구채를 구비하고 있어 한 손에는 장구채를 쥐고 친다면 보다 실감나는 장단이 연주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셨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무릎장단으로 기본 타법 네 가지를 연습하며 명고(名鼓 : 이름난 고수)의 길에 들어서보면 어떨까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