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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Culture)

지리산이 주는 '공존'의 의미



우리 나라의 명산을 꼽으라면, 지리산을 꼽지 않는 이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지리산 들머리('들어가는 첫 머리'라는 뜻으로 '들목'과 같은 말)에만 발을 딛여도 산이 지니고 있는 위엄과 험준함에 가슴이 열리고, 자연이 보여주는 오묘함과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되죠. 그런데 명산인 지리산과 같은 자연이 우리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비의(秘意; 숨겨진 뜻)는 '가슴의 열림'이나 '감탄'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명산인 지리산 뿐 아니라 동네의 작은 산마저도 그러한 자연이 우리네에게 전하고자 하는 품고 있는 의미는 바로 '공존'일 것입니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의 속내를 들여다보자면, '서로 다른' 나무들이 '공존'하고 '서로 다른' 새와 곤충, 동물들이 '산'이라는 울타리에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자연을 벗삼아 살고 있는 우리네 인간살이 또한 이러한 '산'의 '공존'을 닮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자연이 우리네 인간들에게 지금 이 시간에도 가르쳐주고 있는 '숨겨진 뜻'이라는 것입니다(비록 산을 찾고, 숲을 찾는 지금의 우리는 '건강'이라는 최우선의 목적 달성에만 눈이 어두워 있지만..).

이러한 탓으로 옛 선인들이 그토록 자연을 예찬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자연에게서 '배움'을 얻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얻어진 배움을 자신들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애썼던 선인들에 비해 지금의 우리네 삶을 돌아보면, 배움을 얻지도 못하며 배움을 얻었을지언정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에게 '이로움'을 주는 대상에 대해 '좋다'라는 가치를 부여하죠. 
자연에 국한해서 보자면, 자연이 '좋은' 대상으로서 평가받는 것은 '이로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건강에 '이로움'을 주기에 자연을 찾는 것이 '좋은' 것이 되는 논리가 그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이와 같은 '자연적인 이로움'을 잊고, 오늘의 우리네 모습은 '인위적인 이로움'을 억지로 만들어내기 위해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일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경제논리를 앞세워 눈 앞의 '이로움'만을 따지고, 서구적 자연관인 '정복'의 메카니즘으로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죠.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층인 오지, 낙도에 위치한 초중고등학교 학생들과 1박 2일의 "즐거운 국악산책"이라는 행사 중 문화탐방지로서 6월에만 세 번째 지리산을 찾으며, '이로움'을 '억지로' 만들어내기 위해 숨을 헐떡이고 있는 우리네 오늘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리산이 주는 '공존'의 의미를 '배우고', '실천'해야할 때임을 깨달아야할텐데... 안타까움이 지리산 계곡물처럼 철철 흘러넘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