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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공학(Instructional Technology)

디지털 다이어트(Digital Diet)를 위한 '재미학(Funology)'

'재미학(Funology)', 우리에게는 너무나 생소한 학문이죠.
역사적인 아픔과 상처를 마음에 담고, 오늘도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우리네 삶은 '재미'와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로부터 '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이 일상의 삶과 예술 곳곳에 스며있을 정도로, 사실 우리에게는 '재미'를 지향하는 일면이 꽤 크다고 할 수 있죠. 물론 우리네가 판소리 같은 예술 속에 담아냈던 해학이나 풍자가 '재미학'의 '재미'와는 사실 다소 거리가 멀죠.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지향했던 사례를 보다 근접하게 비교하자면 '놀이'와 관련을 지어 '재미'를 풀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심층적 접근은 추후로 미루고...)

『재미학: 사용성에서 즐거움에 이르기까지』라는 이 책은 HCI(Human-Computer Interaction)의 한 연구분야의 결과물입니다. 
이 책은 인간과 컴퓨터의 상호작용에 관한 미국에서의 학문적 연구가 얼마나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을텐데요. 컴퓨터를 사용하는 인간의 심리적 속성, 반응 등을 심층적으로 살피고 이를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정리하여, 향후 생산할 제품에 예측·반영하는 일련의 과정은 '재미학'을 포함한 모든 분야에 고루 적용되는 것입니다.

HCI에서의 재미로 게임이나 스마트폰 조작의 편의성이나 직관성이 주는 재미를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더 나아가 모든 일상용품 제작에 있어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재미'적 요소를 어떻게, 어느 정도 녹여내느냐는 제품의 사용성을 결정해줄 뿐 아니라 제품에 대한 인식적 틀거리(paradigm)를 바꿀 수 있게 하는 요소라는 것입니다. 



'재미'는 교육에 있어서도 곱씹어봐야할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재미'는 요사이 한창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G-러닝'에만 필요한 요소는 아니라 생각합니다. 

'재미'가 교육에 필요하고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이를, '흥미'라는 용어로 바꿔보죠. 어떻습니까? '재미'가 아닌 '흥미'라는 어감일 때는 바로 동기(motivation)와 연관짓게 되죠. 교육에 있어서의 '재미'의 필요성이나 중요성은 제가 굳이 역설하지 않아도 다들 인식하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점수 위주의 교육, 고리타분하고 지루한 주입식 교육..... 작금의 우리네 교육현실은 '재미'를 살리지 못하면, 학습이 죽을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보다 '자극적'이고 보다 '무뇌적'인 자극들이 즐비하게 학습자의 환경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보니 학습자들은 자연스레 '그런' 자극에 익숙해 있고, 그에 따른 반응에 자신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휴일이나 방학의 하루를 떠올려보면, 보다 쉽게 이해되죠. 아침에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카톡을 확인하고,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하루 종일 게임에 몰입합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아니라면 TV가 우리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사고를 장악합니다. 이런 일상이 어느 집 누구에게만 벌어지는 것이라면 그리 문제될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 아이들은 갈수록 디지털(Digital) 문화에 친숙하고, 디지털 기기가 아니면 '재미'를 느끼기 어려워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TV를 차단하는 것이 문제해결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못하죠. 그런 시도는 가정의 불화, 부모 자녀 간의 충돌만 격화시킬 뿐입니다.


우선, '끊어라' 보다 '줄여라', 디지털 다이어트(Digital Diet)가 필요합니다.

비만의 문제가 심각한 이에게 지금 당장 음식을 '끊어라'는 것은 다이어트가 아니라 죽음을 권하는 것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기가 일상화되어 있고, 디지털 문화에 중독되어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끊어라'가 아니라 '줄여라'이어야 할 것입니다. 줄이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의 상태나 성격, 친구들의 상태나 가정의 환경 등 여러 변인들을 폭넓게 고려하여 효과적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강구해야 합니다. 마치 정답처럼 전문가가 제시해주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콩나물을 시루가 아닌 바닥이 막힌 그릇에 넣고 물을 주는 것이나 난 화분에 수시로 물을 준 결과가 될 수 있습니다.


두번째, '재미'를 '줄이기' 위해 '재미'를 '늘려라', 아날로그 즐김(Analogue Indulgence)이 필요합니다.

디지털 문화가 주는 '재미'를 줄이기 위해서는 아날로그 문화가 주는 '재미'를 즐길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날로그의 '재미'가 디지털의 '재미'를 능가할 수 있고, 대치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재미'로 가장 적당한 것은 몸을 움직여 얻을 수 있는 '재미'입니다. 운동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아날로그시대 같으면 놀이가 그에 해당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효과적인 것은 자연 속에서 '뛰어놀' 수 있는 기회입니다. 가족과 함께 야외나들이를 가거나 그게 허락치 않는다면 친구들과 어울려 갖는 나들이는 디지털 다이어트에 아주 효과적입니다. 물론 아예 자연 속에, 흔히 '시골 문화'라고 하는 환경 속에 살 수 있다면 더할나위없겠죠. 연령이 어릴수록 디지털 중독 증세가 심각할수록 이와 같은 처방은 효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디지털 문화에 대한 중독 증세는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거부감과 비례합니다. 디지털 문화에 중독 증세가 심할수록 아날로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는 것이죠.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가 부모와 대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책 읽는 것이나 공부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이런 이유라 할 수 있죠. 


저 역시 '얼리아답터(Early-Adopter)' 축에 낀다고 할 정도로 디지털 문화 중독자입니다. 하루라도 디지털 기기와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고, 디지털 문화에 매우 긍정적이고 친숙한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iPad)만 있으면 어디를 가도, 어떤 지루한 상황에 처해도 걱정할 것이 없고, 모니터를 쳐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드는 수준입니다. 스마트기기(Smart Devices)에 한창 빠져 있을 때의 경험을 비추어보면, 스마트기기 모니터에 장시간, 과도로 집중하게 되면 책의 활자화된 문자에 집중이 어려워짐을 확인하였습니다. 이에 관한 과학적인 실험 결과도 있을텐데요. 일부러라도 스마트기기를 '멀리', 다시 말해 디지털 다이어트를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그만큼 아날로그 문화를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TV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보니, 다이어트가 그저 음식을 줄이고 운동 좀 한다고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관, 인생관, 일상의 삶을 송투리째 바꾸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더군요. 디지털 다이어트를 위한 노력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번째, '재미'있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공부가 지겹지 않은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공부가 하고 싶다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요? 공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하루 이틀, 한 사람 두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죠.

어떻게 하면 공부를 즐길 수 있게 할까? '재미' 있으면 되지 않을까요? '재미'가 없다면 컴퓨터 게임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빠져 즐기던 컴퓨터 게임도 실증이 날 때는 '재미' 없다고 합니다. 

어른들도 한가로운 시간을 갖게 되면 으례 '뭐 재미있는 일 없을까?', '야~! 뭐 재미있는 거 없냐?'하며 '재미'를 궁리합니다. 그만큼 인간에게 있어 '재미'란 그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정도의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죠.

학습에 '재미' 요소를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무수한 학문적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네도 이제 곧 위에 소개한 '재미학'과 같은 학문도 생겨나고, 그에 관한 논문, 서적들도 생산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공부가 '재미'있는 학습환경의 조성은 연구자 뿐 아니라 교사, 학부모 모두 함께 쏟는 노력에 의해 가능해질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