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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역사


정가(正歌 : 가곡․가사․시조)나 범패 등 우리나라 전통성악의 여러 갈래 중 판소리는 가장 널리 애호되는 음악예술이다. 이것은 아마도 듣는 이로 하여금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터뜨리게 하기도 하고,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도 할 수 있는 판소리 사설의 내용성이나 소리의 가락에 실린 진솔한 감정표현 때문이 아닌가 한다.

판소리는 조선 후기 이전부터 마을의 큰 굿이 벌어진 놀이판에서 또는 무당의 굿판에서 광대가 몸짓을 곁들여 소리도 하고 재담도 하며, 마치 무당이 본 풀이의 긴 서사무가를 노래로 엮어가듯이 긴 이야기를 변화있게 짜나가는 형태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그러한 추정을 뒷받침할만한 확실한 문헌적 근거가 없는 실정이라 학계에서는 이견만이 분분할 뿐이다.

판소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영조 30년(1754) 유진한(柳振漢, 1711~1791)의 『만화집(晩華集)』에 한문시 200구로 기록된 춘향가의 사설로 알려져 있다.

이후 18세기 후반 무렵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라는 문헌에 나타난 춘향가․심청가․박타령(흥보가)․토끼타령(수궁가)․화룡도(적벽가)․배비장전․옹고집전․변강쇠타령․장끼타령․무숙이타령․가짜신선타령․강릉매화전의 12마당 판소리는 19세기에 접어들어 오늘날 전해오는 5마당의 소리로 줄어든다.

이렇듯 판소리가 12마당에서 5마당으로 축소된 것은, 우선 신분계층으로서 상류층인 임금이나 양반층, 또 중인출신의 지식층이 판소리의 향유층으로 등장하면서, 당시 조선사회의 유교적 이념인 <삼강오륜(三綱五倫)>과 같은 도덕적․윤리적 잣대로 이를 해석한 탓이다.

한편 천인출신의 소리꾼이 아닌 ‘양반광대․비갭이․비갑이’라고도 불리는 ‘비가비광대’의 출현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비가비광대로 향반 출신인 권삼득 명창, 한문에 깊은 조예를 갖고 진사과에도 등과했던 정춘풍이나 신재효 등을 들 수 있는데, 이와 같은 상류계층 혹은 중인계층 출신의 소리꾼들은 듣는이들을 웃기고 즐겁게 이끌 수 있었던 원색적이고 실감나는 사설이 비도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하여, 부부 사이의 정절을 보여준 <춘향가>나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성을 나타낸 <수궁가>, 벗 사이의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한 <적벽가>, 그리고 형제간의 우애를 보여준 <흥보가>, 부모에 대한 효를 주제로 한 <심청가>와 같이 일반서민들을 선도하고 교화할 수 있는 내용의 판소리만을 선별하여 부르고 향유하였던 것이다.

품격있는 한자성어나 난해한 한문투 사설의 삽입과 같은 내용적 변화 역시 이 두가지 요인에 기인하는데, 한 사람의 작곡가에 의해 창작된 오페라와 달리 판소리 예술은 그 주체인 소리꾼이나 향유층의 음악적 요구에 의해 점진적이며 다양한 변모과정을 거쳐 오늘의 모습에 이르렀다.


판소리의 짜임


판소리는 1인의 소리꾼과 북으로 장단반주하는 1인의 고수, 그리고 이를 듣는 청중이 엮어가는 음악이다.

소리꾼은 사설을 이야기하듯 풀어내는 ‘아니리’를 통해 해설자로, 소리를 통해 주인공으로등등, 이야기 속의 다양한 배역들을 모두 소화해내어야 하는 일인다역의 연기자이다. 또한 청중을 ‘웃기고 울리는’ 경지에 도달해서 깊은 공감과 감탄을 이끌어내기 위해 ‘소리’나 ‘아니리’, 그리고 ‘창조’ 외에도 극적인 상황을 몸짓으로 그려내어 시각적 효과를 더해주는 ‘너름새’ 즉 ‘발림’의 요소로 판소리를 보다 효과적으로 엮어낸다.
 


신재효의 <광대가>라는 단가에는 소리꾼의 자질에 대해, “광대라는 것은 제일은 인물치레, 둘째는 사설치레, 그직차 득음이요, 그직차 너름새라…” 즉 ‘뛰어난 인물을 겸비하고, 분명하고 정확한 아니리로 이야기를 엮어나갈 수 있어야 하며, 좋은 목소리로 장단과 가락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고, 마지막으로 구성지고 맵씨있는 발림으로 청중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소리의 기량으로 소리의 극적 긴장과 이완의 ‘맺고 품’을 자유로이 조절해서 소리판의 예술적 균형을 이루어내야하는 소리꾼은 ‘부드러움’, ‘화려함’, ‘고상함’을 통해 ‘정제된’, 혹은 ‘다듬어진’ 소리가 아닌, 오히려 ‘다소 거칠면서 투박한, 그리고 곰삭고 구수한’ 소리의 미(美)를 추구한다. 따라서 지나치게 맑은 소리는 ‘양성’이라 하고, 기교에만 치우치고 긴장감이 없는 소리는 ‘노랑목’, 소리와 입안에서 울리고 분명치 않은 소리를 ‘함성’, 공력이 들지 않아 목이 트이지 않은 소리를 ‘생목’, 발발떠는 소리인 ‘발발성’ 등등의 소리는 예술적 가치가 없는 소리로 여기는 반면, ‘수리성’이라고 하는 쉰소리같이 껄껄하지만 탁트인 소리와 천부적으로 타고난 좋은 소리인 ‘천구성’을 으뜸으로 여긴다.

소리꾼들은 이런 소리를 만들기 위해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폭포수 밑이나 토굴 같은 장소에서 피나는 ‘독공’을 해왔다. 소리꾼들이 독공의 장소로 이런 곳을 택했던 것은 판소리의 연행이 시끌벅적한 장터나 잔치와 같은 옥외에서 이루어졌던 만큼 성량이 큰 소리를 요구했던 데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춘향가>와 같이 가장 긴 것의 경우 8시간이란 장시간의 소리를 소화해야하기 때문에, 열린 공간에서 청중을 압도할 수 있는 성량뿐 아니라 소리의 공력을 쌓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독공의 과정을 거쳐 모든 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게 되는 경지를 “득음했다”고 하는데, 이 경지가 되면 소리꾼은 비로소 ‘명창’이나 ‘국창’의 영예를 안을 수 있는 자질을 갖추게 된다.



장고로 반주하는 여느 성악곡이나 기악곡과 달리 판소리는 북으로 반주하는데, 소리꾼의 소리를 좌우할 정도로 고수의 역할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는 고수의 역할이 반주로서 단지 연주자의 소리를 뒷받침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꾼의 소리를 이끌고 나가야함을 나타내는 것인데, 널리 알려진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 즉 1인의 명고수에 두 명의 명창이 배출될 수 있다는 표현은 소리의 내면까지 꿰고 있는 고수가 소리의 빠르기나 세기, 음악적 흐름 등에 영향을 미치며 소리꾼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역할의 중요성을 빗대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판소리를 듣는 청중들의 ‘추임새’나 반응이 소리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 또한 판소리만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여타의 음악공연에서 청중에게서 생산된 소리가 일체 연주자의 방해요소로 여겨짐을 비추어볼 때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다. 그러나 판소리에 있어, 직접 부를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명창 못지 않게 소리의 속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한 ‘귀명창’이 적재적소에 던져주는 추임새는 소리에 대한 감동을 표현하는 자연적인 감탄사로서 소리꾼과의 음악적 교감을 이루어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추임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소리꾼의 소리의 자질이 평가되고, 소리꾼의 소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은 소리판에 참여한 청중 역시 판소리예술의 주체임을 자각케 하는 것이다.


판소리 5마당


‘구전심수’, 즉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는’, 체득의 방법을 사용해온 판소리는 ‘악보’라는 틀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그 속에 생동감 있고 변화성을 내재한 음악을 담을 수 없다는 한계 탓인데, 그로 인해 예로부터 판소리는 스승의 소리를 제자가 귀로 들어 기억하고 습득하는 교육방식을 사용해왔다. 따라서 어떤 소리꾼에게 소리를 전수받느냐 하는 것은 소리를 받는 제자 자신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며, 교육자인 스승의 음악적 모양새, 시김새, 발림, 아니리 등이 피교육자인 제자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하나의 음악적 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제’ 혹은 ‘~바디’, ‘~더늠’이란 이를 가리키는 음악적 용어이다.

다시 말해 흔히 ‘동편제 송흥록의 춘향가’ 혹은 ‘서편제 박유전의 춘향가’라는 식으로 각각의 판소리를 구분하고, 곧 이는 동편제의 음악특징을 지닌 송흥록의 춘향가와 서편제의 음악특징을 지닌 박유전의 것이 이야기 줄거리 면에서는 똑같을지라도 전혀 다른 판소리라는 것이다. 또한 그 하위개념으로 ‘~ 바디 춘향가’니 ‘~ 더늠의 사랑가 대목’이니 하는 것들이 있다.

한편 이와 같은 음악 구성적 용어가 아닌 감상에 관련된 용어로서 <눈대목>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청중들이 즐겨들을만한 대목을 따로 떼어 부름을 일컫는다. 예컨대 <춘향가> 중 ‘적성가’나 ‘사랑가’, ‘쑥대머리’ 등의 눈대목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것들이다. 특히 ‘쑥대머리’의 경우 근세기 최고의 명창으로 지목받는 임방울 명창이 음반으로 취입하여 백만장 이상이나 팔렸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었다. <춘향가>는 남원 퇴기 월매의 딸인 성춘향이 남원 부사의 아들인 이몽룡과 백년 가약을 맺었으나 이별한 뒤 신임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여 옥에 갇히자,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구해 준다는 내용의 이야기가 짜임새있게 전개되어, 문학성으로나 음악성으로나, 또 연극적인 짜임새로나 지금까지 전해지는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서 가장 예술성이 높은 마당으로 꼽히며 창극으로도 매우 귀에 익은 판소리이다.


오늘날 전해지고 있는 판소리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5마당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소리꾼 저마다의 서로 다른 음악적 면모를 기반으로 제각기 불려지는 판소리의 속내를 이해한다면, 오늘날 연행되고 있는 판소리가 얼마나 많은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한화그룹 사보 2001년 4월호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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