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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Korean Music)/글로 밟는 국악누리

'타령'에 묻어나는 우리네 소리의 맛


타령’에 묻어나는 우리네 소리의 맛



흔히 쓰이는 ‘-타령’은 일상생활 속에 그 용례를 쉽게 찾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음악용어로서 우리 전통음악의 여러 갈래, 여러 곡에 사용되는 것이기도 하다.

일상생활의 용례에서는 ‘새 옷 타령을 하다’ 혹은 ‘허구헌날 돈타령이냐’와 같이 ‘어떤 말 다음에 쓰여 어떤 사물에 대한 생각을 말이나 소리로 나타내 자꾸 되풀이하는 일’이란 뜻으로 쓰이거나 ‘평생 이 타령으로 살 수는 없다’ 또는 ‘사업은 아직도 그 타령이다’처럼 ‘이, 그, 저’ 따위의 다음에 쓰여, 변함없이 똑같은 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이런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실은 일상생활에서 ‘-타령’이란 말은 일정 정도 부정적인 느낌을 담는 것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달리 음악용어로서 ‘-타령’은 ‘타령 한 자락 해봐라’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왠만하면 입으로 흥얼거릴 수 있는 친숙하고 쉬우며 흥이 나는’ 느낌을 지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곡명 자체가 ‘타령(打令)’인 <영산회상(靈山會相)> 중 8번째 곡을 비롯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민요 중 ‘군밤타령’이나 ‘몽금포타령’, ‘신고산타령’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음악에 ‘-타령’이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타령’이란 곡이 얼마나 많은지 한번 꼽아보자.

우선 이미 언급한 대로 정악(正樂)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영산회상타령이 있다. 이 곡은 상령산·중령산·세령산·가락덜이·상현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도드리·군악과 함께 일종의 모음곡으로 연주되는 것으로서 군악 바로 전 곡으로 연주된다. 전체 4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 장단은 12박이다. 예전에는 계면조 곡인 이 곡을 우조로 변조한 "별우조타령"이라는 곡을 섞어 연주하기도 하였다. 또한 비교적 빠른 속도감과 흥겨움을 느낄 수 있도록 7·8·9번째 곡 염불·타령·군악을 따로 모아 연주하기도 한다.

한편 판소리에서도 그 곡명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판소리 12마당 중 하나였으나 조선조 이후 그 전승이 끊겼던 것을 1970년에 박동진 명창이 복원하여 공연하였던 일명 <가루지기타령(橫負歌)>이라고도 하는 <변강쇠타령>이 있으며, <춘향가>의 ‘방아타령/자진방아타령’, <심청가>의 ‘중타령’, <적벽가>의 ‘싸움 타령’이 있다. 또한 <흥부가> 중에는 더욱 많은 ‘-타령’이 등장한다. 이것은 아마도 <흥부가>의 사설이 여타의 판소리 마당들보다 우리네 일상적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탓이 아닌가 여겨진다. 심보 고약한 형 놀부에게 쫓겨난 흥부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슬픈 가락 ‘가난 타령’을 필두로 해서 ‘돈타령’, ‘박타령’, ‘팔자타령’, ‘약타령’, ‘비단타령’, ‘송화색타령’, ‘흑공단타령’, ‘새집타령’, ‘화초장타령’, ‘병신타령’, ‘초라니타령’ 등 다종다양한 사설과 가락의 ‘-타령’이 나온다.

그런가하면 ‘서서 부르는’ 연행의 특성에서 그 이름이 비롯된 선소리와, 이와 달리 흔히 앉아서 부른다하여 ‘좌창(坐唱)’이라고도 하는 잡가에도 상당히 많은 ‘-타령’이 있다.

우선 선소리에는 거의 일정한 가사가 없이 “나너 에 허” 등의 입장단으로 시작하는 ‘경기 앞산타령’, 앞산타령에 비해 비교적 낮은 음역으로 부르는 ‘경기 뒷산타령’, ‘경기 잦은산타령’이 있는가 하면, ‘놀량, 경발림(경사거리)’와 함께 부르는 서도선소리 중 ‘서도 앞산타령’, ‘서도 뒷산타령’이 있다.

다음으로 잡가 중에는 ‘긴잡가’라고 하는 12잡가와 달리 속도가 빠르고 사설이 많으며 내용이 해학적인 것이 특징인 휘몰이잡가에 ‘곰보타령’, ‘병정타령’, ‘바위타령', ‘기생타령', ‘맹꽁이타령', ‘비단타령', ‘순검타령' 등이 있다. 민요의 ‘-타령'은 기지가 두루 넘치고 재기발랄한 즉흥시적 해학미가 있는 내용으로서, 대개 동물·식물 및 기타와 자연 등을 제재로 한 노래들이다.

널리 알려져 있는 ‘새타령', ‘도라지타령', ‘창부타령', ‘한강수타령', ‘경복궁타령'을 비롯해서 ‘까투리타령', ‘개구리타령', ‘맹꽁이타령', ‘매화타령', ‘오봉산타령', ‘금강산타령', ‘은실타령', ‘물레타령', ‘이야홍타령', ‘각설이타령'에 이르기까지 무수히 많은 ‘-타령'이 있다.

심지어 전통음악에서 찾아볼 수 있는 ‘-타령'은 그 음악을 토대로 새로이 창작된 <경복궁타령 주제에 의한 관현악>이나 <사물과 콘서트 밴드를 위한 타령변주곡>, <합주곡 제5번 `타령에 의한 전주곡`>과 같은 음악에서도 발견된다.

이렇듯 우리네 일생생활 속에서 자주 쓰이는 ‘-타령'이란 말이 음악에서 쉽게 찾아지는 것은 전통음악이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생성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피곤에 지치고 각박해져만 가는 세상살이 속에서 갖가지 ‘-타령' 음악이 주는 소리의 맛을 느껴 본다면 또다른 삶의 여유와 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국립국악원 <국악소식> 2000년 겨울호 게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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