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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교육(Korean Music Education)/전래동요로 꾸는 꿈

전래동요 부모 길잡이

아이들의 노래, 왜 전래동요여야 하는가?


어른들은 아이들을 잘 모릅니다.

어른도 어렸을 때는 ‘아이’였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아이’를 잊고, ‘어른’이 되지요.

그러면서도 대개 ‘아이를 이해한다’고 쉽사리 얘기하거나 ‘애들은 어려서 모르니까’라고 단정지어 어른의 생각대로 ‘아이’를 ‘어른처럼’ 만들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흔히 <동요>라고 부르는 노래는 어른이 아이들을 위해 만든 ‘어른의 아이들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동요>가 아이들의 정서를 반영한 노래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아이들이 지은 노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래동요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일 뿐 아니라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이들의 느낌, 생각, 정서를 고스란히 표현한 ‘아이들이 지은 노래’입니다. ‘아이들의 세상이야기’라고 할 수 있죠.


전래동요를 눈여겨보면, 아이들이 해와 달, 별을 어떻게 생각하고, 매미, 잠자리, 달팽이에게 무슨 얘기를 하며 누구와 어떻게 노는지를 속속들이 쉽사리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눈으로 본, 아이들의 삶의 이야기들이 노랫말로 된 노래가 전래동요입니다. 어른들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어른들의 생각으로는 해낼 수 없는 그런 다양한 ‘헤아림’들이 전래동요 안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전래동요는 아주 단순한 노랫말과 2, 3음으로 구성된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들의 발달단계나 학습수준이 너무나 잘 반영되어 있는 탓인데요. 방아깨비를 잡아 두 뒷다리를 잡고 놀며 부르는 강원도 원주의 노래를 보면, 고작 “아침방아 쪄라. 저녁방아 쪄라”하는 네 음절의 짧은 노랫말과 3음으로 노래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듯 거의 대부분의 전래동요는 아이들이 익히고 부르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똑같은 옛날이야기를 매일 들려주어도 전혀 지루해하지 않고 나름의 상상력으로 그 때 그 때 이야기를 달리 듣는 아이들의 발달단계적 특성을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면, ‘단순해서 재미없어하거나 지루해하지 않을까’하는 어른들의 걱정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님들께 수수께끼같은 문제 하나 드리죠.

“하마 하마 춤춰라. 요 뿔 내고 춤춰라. 조 뿔 내고 춤춰라.”

이 노래는 어떤 곤충을 노래한 전래동요입니다. 무엇일까요?

아마 이 노래의 고향에 살지 않는 분들이라면 알아맞히기 쉽지 않으실겁니다.

이 노래는 바로 달팽이를 노래한 전래동요입니다. 


이처럼 전래동요에는 그 노래의 고향말, 즉 사투리가 노랫말에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어른들이 지어준 <동요>에서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이런 고유한 사투리 노랫말은 전래동요에 유감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전래동요를 부르면 자기가 쓰는 사투리로 노래하게 되고, 다른 데 사는 또래친구들의 언어적 표현을 알게 되어, 풍부한 언어적 표현력과 다양성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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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꿈’이라면 ‘노래’는 ‘놂’


또 전래동요는 <동요>가 그렇지 않은데 반해, 거의가 ‘놀이노래’입니다. 그저 분주하게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꾸며가는 아이들의 ‘놂’에는 특정한 놀이기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지요.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놀잇감이고, 놀이는 곧 아이들을 ‘아이답게’하는 고갱이(‘핵심’의 순우리말)입니다. 노랫소리가 없는 ‘놀이’, 아니면 소리가 없이 노는 아이들을 상상해보셨나요?


아이들은 단지 또래친구랑 놀 때만이 아니라 혼자서 물웅덩이에서 놀 때, 방아깨비, 풍뎅이, 반딧불이 같은 곤충이랑 놀 때…, 아이들의 ‘삶’은 그 자체가 ‘놂’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고,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노래는 거의가 놀이노래가 되는 것이지요. 노래가 놀이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아이들로 하여금 놀이를 즐김과 동시에 노래를 즐길 수 있게 해주며, 놀이와 노래로 하여금 아이들이 자신을 깨닫고 남과 자연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누군가 노래하고 또 누군가는 그저 부르는 노래를 일방적으로 들어야하는 형태가 되어버린 지금의 노래와 달리, 전래동요는 ‘함께’ 어울려 놀며 ‘함께’ 어울려 부르는 노래입니다. 이는 아이들에게 있어 노래가 ‘나’와 ‘네’가 함께 ‘우리’로 어울어지는 공동체성을 기르게 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게 합니다. 그러기에 어른들이 만든 지금의 노래문화에 길들어지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를 보면 어김없이, 자신이 노래하고 싶으면 대뜸 “○○야, 우리 ○○ 노래하자”라고 하죠.


거기에다가, 전래동요는 ‘자연노래’입니다. 노래를 부르면 그 속에 자연이 있고, 자연에 대한 생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TV나 컴퓨터와 같은 기계문명에 친숙함을 느끼는 요즈음의 아이들과 달리 옛 아이들이 자연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데 전래동요는 무척 큰 몫을 합니다. 자연 속의 동물이나 식물 또는 자연현상과 관련된 노랫말로 이루어져 있는 많은 전래동요는 아이들로 하여금 이 노래를 통해 자연을 알고 자연에 친숙함을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노래, 어떤 노래이어야 하나요?


1950년대 인도의 싱 교수가 미모사라는 식물에 인도의 전통음악인 라가(Raga)를 들려주었더니 기공의 수가 많아지고 세포의 크기도 커졌다고 하는 실험을 비롯해서 음악이 생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전문가들 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아기를 잉태하고 있는 임산부의 태교음악에 대한 관심은 이에 비롯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 아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어느 부모님이나 한결같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 ‘좋다고 하는 음악’을 찾는 것일테고요.

정서가 메말라가고 건강한 아이들의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는 지금 아이들의 노래, 어떤 노래이어야 하겠습니까?



※ ‘전래동요’라는 용어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전해져온 우리의 아이들 노래와 일제 강점기 이후 서양음악어법으로 새롭게 작곡된 아이들 노래인 ‘동요’와 구별하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학계에서조차 통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이들 노래의 역사로 비추어 보더라도 ‘전래동요’라는 용어는 그 쓰임의 동기를 알고 곱씹어보아야할 것입니다.